작가노트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것
공간과 사람, 껍질과 본질, 정지상태와 움직이는 것에 대한 사실적 파노라마
2001년 부터 2009년까지. 북아현동을 알게되고 이곳에서 학교를 다니고 생활한지 벌써 9년이다. 그 9년의 생활을 이곳에서 보냈음에도 불구하고 북아현동은 내게 있어 ‘추계예
대가 있는 낙후된 동네.’딱 이 정도였다. 왜 북아현동에는 다른 대학교 근처라면 모두 있는 패스트 푸드점, 대학생들 만을 위한 술집 하나 없을까? 왜 이 동네는 깨끗하지 못하고 모든게
낡았으며 새벽이 되면 쓰레기 냄새로 동네가 가득찰까? 모든게 불만이었다. 그러던 중 내게 들려온 반가운 단어. ‘뉴타운.’
됐다. 이거면 이제 나도 다른 대학 다니는 친구들처럼 이제 깨끗한 환경에서 공부 할수 있어. 저 지긋지긋한 달동네가 사라지는 그날, 나도 그 특혜를 누릴 수 있을까?
카메라를 들고 처음으로 북아현동 골목에 들어섰다. 이제 곧 사라질, 그리고 나를 위해서라도 사라져야만 하는 달동네를 기록하기 위해서. 첫 인상은 생각보다 더 비좁고 더 낙후되
어 보였다. 그리고 골목에 들어서곤 처음으로 한 사람을 지나쳤다. 카메라를 들고 두리번 거리는 나를 몹시도 경계하는 눈치였다. 그 사람의 눈빛에 주눅이 든 나는 도망치다시피 그 달
동네를 빠져나왔다. 분명 그들은 자신들이 ‘일회성 대상화’가 되는 것이 몹시도 불쾌했던 모양이다.
그들과 함께하는 예술이란걸 하기 위해 다시 한번 조직적으로 북아현동에 올랐다. 골목을 오르는 계단 옆으로 지붕이 있었고 발밑으로 집의 창문이 있었다. 반지하의 집으로 들
어가기 위해서 통과해야만 하는 대문은 어린아이 한명이 딱 들어갈만한 크기였다.‘주민들과의 소통’을 전제로 하고 있었기에 조금더 편하게 오를 수 있었고 그들의 삶을 가까이서 보기
시작했다. 우리 팀이 만든 새 티셔츠를 주민들이 입던 헌 옷가지들과 교환하기 위해 그 수많은 골목들 중 한 골목 바닥에 우리의 옷들을 깔아놓고 지나가는 주민들에게 무작정 말을
걸던 것이 그 시초였다.
그렇게 만나게된 수많은 북아현동의 주민들. 그렇게 하나하나 이야기를 안고 모인 그분들의 옷가지. 괜찮다던 나를 끌고 기어코 집안으로 들어가셔서 손에 귤 하나를 쥐어주시던 아
주머니,꽤나 춥던 날 방바닥에 발이 닿던 순간 ‘너무도 차갑다고’느껴지던 그 방에 혼자 살고계시던 할머니, 아랫목을 내어주시곤 앨범을 꺼내 함께 자신의 화려했던 지난날을 회상하
시던 할아버지까지...숨이 막힐정도로 붙어있던, 닭장같던 집들에는 수많은 사람이 각자의 삶을 살고 있었다.
지난 9년간‘지긋지긋한 달동네가 사라지는 그 날이 오면.’이라고 생각했던...
‘없어져야 할것만 같았던 그 낙후된 모습의 골목’에 사람이 살고 있었다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아주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그들도 한 가정의 아버지이고, 그들도 아이들의 어머니이다.
그들도 일터로 나가고 가족끼리 대화를 나누며,
그들도 이웃과 나누는 시간을 기다린다.
골목 곳곳에는 밥짓는 냄새와 아이를 다그치는 엄마의 목소리,
저녁 TV드라마를 보며 가족끼리 나누는 대화도 들린다.
그들도 유난히 하늘이 맑은 날에 기분 설레여하고,
그들도 자라나는 아이를 보며 많은 이야기와 꿈을 꾼다.
나는, 그리고 우리는 지금까지 이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보지 않고 있었다.
그곳에서 삶을 꾸려가는 사람들은 완전히 배제한 채 갈아 엎어져야만 하는 지저분한 풍경 정도로만 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곳에 다가서자 하나 둘씩 사람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보이지 않았을 뿐, 그들은 그곳에서 계속 살아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것은 비단 ‘나’ 혼자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리고 이것은 ‘북아현동’에 국한된 이야기가 아니다.
‘관찰자’의 시각에 따라 ‘대상’은 달리 보인다는 것.
사진을 찍는 모든 사람이 가장 처음 배웠어야 할 이론을 꽤나 오랜시간이 지난 지금, 몸으로 ‘느끼기’ 시작했고, 나에게 일어난 이 작은 사건으로 생각하게 되었다.
-보이는 것과 존재하는 것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겉으로 드러나는 껍질과 본질의 관계는? 멈춰져 있는 것과 변화하는 것의 관계, 그리고 공간과 그 안에 살고있는 사람들과의
관계도. 끊임없는 물음이 꼬리를 물고 물었다.
관찰자의 시각에 따라 대상은 달리 보이기 시작한다. 이 너무도 광범위한 이야기의 시작으로,
나와 너무 먼 곳의 이야기보다는 처음 내가 인지하지 못하고 있던 부분을 건드려준 ‘북아현동’에 관해 써내려가려고 한다.
나는 내가 북아현동에 직접 올라서 느꼈던 감정들과, 그곳의 할머니와 아주머니, 아이들과 관계를 맺을 당시의 감정, 지금까지 본질을 보지 못하고 껍질, 공간만 보고 있었다는 울림과
감동을 내 작품을 대하는 사람들에게 주고자 노력할 것이다.
이 북아현동 연작은 총 세가지 단계로 계획한다.
1. 처음 북아현동 표피의 파노라마 기법을 이용한 광활한 스펙타클한 표피와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주민 조각의 작업을 시작으로
2. 조금씩 그 속으로 들어가며 그 안에서의 시각에 의한 구체화,
3. 마지막으로 그곳을 구성하고 있는 본질인‘사람’에 주목하며 작업을 이끌어나갈 생각이다.
그들의 삶의 터전인 북아현동을 제3자의 시각이 아닌 그것을 구성하고 있는 이들의 시각으로,
그리고 그들 자신조차 발견해내지 못한 내면의 본질적인 모습들을 더욱 아름답게,
혹은 감추고 싶은 모습들을 더욱 적나라하게, 때로는 더욱 광활하게 표현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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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평론

어둠을 밝히는 불빛 그리고 실루엣

사진기가 발명이 되고 사진이 하나의 예술장르로 급부상하면서 사람들에게 회화와는 다른 방법으로 미적 이미지를 공급하는 역할을 해오고 있다. 사진은 일단 회화가 가지는 가장 큰 특성인 유일무일성에서 벗어나 에디션을 가지고 좀더 많은 사람들에게 예술을 아름다움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부여했다. 또한 현대에는 한정된 재능을 가진 사람들의 생산물이 아닌 일반인들도 자신의 시각에 맞춘 이미지를 생산하고 이를 공유하고 있다. 이것은 무엇을 말하는가. 너무나 많은 이미지에 노출된 현대인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디어를 통해 이미 충분히 자극적인 이미지에 적응이 된 현대인들에게 그냥 그저그런 작품으로는 감흥을 줄 수 없다는 말로 해석할 수 있다.

사진이 가진 수많은 속성 중 한정된 시간성과 공간성을 깨고 독창적인 작품을 하는 작가가 있다. 바로 신예 작가 장원영이다. 작가는 1000장 이상의 사진을 찍고 각각의 이미지를 분리하고 다시 조합해서 만들어 내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하나의 작품을 생산해 낸다. 이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 안에 실루엣을 넣어 또다른 하나의 이야기를 추가해 보는 재미를 더하고 있다. 이 실루엣은 작품을 흘려 본다면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작품의 적극적으로 관찰하고 가까이 할때 비로소 하나씩 발견하게 되는 재미를 선사한다. 작가 또한 작업을 통해 그러한 재미를 주고 싶었다고 한다. 오랜 세월 두고 보아도 그때마다 새로운 볼거리를 제공할 수 있는 작품으로 즐기기를 바란다는 것이다.

처음 작품을 대하게 되면 자신이 사는 혹은 아는 곳인가 해서 건물들을 유심히 보게 된다. 아는 걸물인데...아는 길인것 같고 아는 장소인것 같은데 왠지 낯설다고 느껴 질 것이다. 그것은 앞서 말한 바와 같이 특정한 공간을 찍은 사진이 아니고 작가의 주도면밀한 계획에 의해 만들어진 가상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이는 건물의 특성이나 장소의 디자인적 요소말고도 늦은 저녘 야근을 하는 직원들을 위해 밝힌 내부의 빛이 밖에서 어떻게 보여지느냐의 모습을 담아 재구성했기 때문에 밤시간대만 볼 수 있는 가변적인 빛의 향연을 만끽할 수 있다.

기본적인 바탕이 되는 이 사진 조합작업이 끝나면 구체적인 주제를 담은 실루엣을 만드는 작업을 한다. 이 실루엣은 시대적 이슈가 되었던 일들, 사회적 주제의식을 담은 이야기들이다. 흔히 우리는 길을 지나다 보면 수많은 아파트 단지를 접하게 된다. 혹은 빼곡히 몰려 있는 주택단지를 보게 된다. 그것도 매일 … 무심결에 지나치긴 하지만 항상 드는 의문, 저기에도 사람들이 살까. 멀리서 보이는 공간을 가까이서 접했을때의 느낌은 완전히 다르다. 나와 같은 사람들이 생활을 하고 살아간다. 밤에 보는 그 화려한 불빛을 밝히는 것은 우리들의 삶이라고 생각한 작가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만들어낸 하나의 작품. 이렇게 시작된 것이다. 이 재미있는 작품은 말이다.

장원영이라는 작가의 시작은 컴퓨터에 대한 관심에서 부터 비롯되었다. 그래픽 쪽으로 공부를 하고 싶었던 작가는 부모님의 배려 속에서 그림을 시작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래픽디자인을 하려면 기본으로 그림을 그려야 겠기에 시작한 미술에 재미를 붙이게 되고 결국 미대에 진학하게 된 것이다. 지난 일년은 전시회 준비를 위해 대부분을 사진 찍는 일과 컴퓨터 앞에서 생활을 했다는 장원영 작가는 작업 시간 외에는 운동과 여행을 즐기는 청년이다. 자전거로 전국 여기저기를 다닐만큼 활동적이다. 이렇게 세상과 사람, 그리고 주변에 관심은 모두 작업과 직결된다.

판화를 전공한 작가는 장르의 구분을 두지 않고 작업을 하다 보니 사진을 기본 바탕으로 하지만 층층이 쌓이는 느낌의 레이어 작업, 에디션이 있는 것...이 모든 것을 종합해 볼때 사진의 영역으로 두기도 그렇다고 판화의 영역으로 보기도 힘들다. 이렇게 장르가 혼합된 작품을 요즘은 흔히 볼 수 있는데 장원영 작가의 작품 역시 한가지 영역에 얽매여 있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했다는 점에서 젊은 작가의 작업답다라고 할 수 있다. 늘 관객과의 소통의 문제에 대해 생각하고 고민한다는 작품 또한 이러한 소통의 매개체라고 생각한다는 작가의 말 속에 작품에 대한 열정과 애착이 묻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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